[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광부 아리랑 본문
검디검은 선탄장에서 달그락 달그락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있다. 눈만 내놓은 광부들이 칼바람을 맞으며 석탄을 걸러내고 있다.
작년 간다 올해 간다 석삼년이 지나고, 내년 간다 후년 간다 꽃 같은 청춘 탄광에서 늙었다.
기차 떠날 적에 고향 그리워 울고, 막장 삽질하니 땀방울이 핏방울이다.
문어·낙지·오징어는 먹물이나 뿜지, 광부의 목구멍에는 검은 가래가 끓는다.
광부아리랑이 흐르는 강원 태백시 철암동 탄광마을 이야기다.
거짓 간판이다. 궁원 다방, 단란주점 젊음의 양지에는 아가씨들이 없다. 광부들이 놀던 상점들은 이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탈바꿈해 관광객들이 놀고 있다.
지금의 연탄은 가난을 말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광부증 들고 다니는 사내는 장가가는 것이 쉬울 정도로 인기 많았다. 우리나라 기간산업이 바로 석탄산업이었다.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며 제1의 광산 도시로 군림했던 태백시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사업이 추진된 1989년 이전까지는 동네 개들이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영화를 누렸다. 현재 태백의 탄광들은 대부분 갱도 문을 닫았고, 장성광업소가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장성 탄광에서 채굴한 석탄에서 폐석을 분리해 상품가치 높은 정탄으로 만들고 있다. 1935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선탄시설로 2002년 근대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됐으며 지금도 석탄을 만든다.
까치발 건물에서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한 아낙네가 출근하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마을에 무당집도 여럿 있었다는데, 막장에 들어가는 남편 운을 점치려는 광부 아내의 애타는 마음이 탄광역사촌 동상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광부 출근길에 여자가 지나가면 화를 당한다고 욕먹었다죠. 하지만 철암동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따라 석탄일을 나갔어요.”
컴컴한 갱도에서 석탄을 캐내는 건 남자들의 몫이지만, 캐낸 석탄을 불 잘 붙는 연료상품으로 만드는 건 여자들의 손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 광부였던 최순덕씨(58)는 하루 8시간씩 억척스럽게 망치로 석탄을 부숴가며 폐석을 걸러냈다. 일손이 모자라 선탄장은 3교대로 24시간 내내 가동됐다. 석탄가루 마시는 것도 갱도의 남자 광부들과 마찬가지.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진폐증 검사를 받고 있는 최씨는 철암탄광역사촌 문화해설사로 일하며 쇠락한 마을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고 있다.
석탄산업이 호황일 때, 철암동에는 한집 건너 한집이 선술집이 생겼다. 안주는 주로 삼겹살. 광부들은 돼지 기름이 석탄가루를 씻어준다고 믿었다. 철암역사탄광촌 슈퍼마켓 자리에 마련된 옛날 식당 풍경이다.
“어서 시장이 들어서야죠. 역사촌이 개관했지만 관광객들이 좀 더 오래 머물다 갈 먹거리와 놀거리가 필요해요.”
올해 초 개관한 철암탄광역사촌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선탄장 맞은편 까치발 건물이라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상점 건물들이 탄광역사촌이다. 광부들의 호탕한 씀씀이를 받아내기 위해 좁은 상가 공간을 확장하려고 하천변에 까치발 모양으로 기둥을 세웠다. 흉물스럽다며 철거하자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지만 건물 외관을 그대로 보존한 탄광역사촌은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페리카나치킨 가게는 문화해설사의 사무실로, 금은방 제일당 옥상은 선탄장 전망대로 활용하며 건물 외관을 모두 보존했다. 식당 3개는 계속 영업을 하고 있지만, 관광객들을 맞이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라 철거된 철암장터가 하루속히 다시 열리기를 마을 사람들은 고대하고 있다.
철암역 건너편 산동네에 올망졸망 광부들의 집들이 모여 있다. 하늘만 빼놓고 온통 까맣던 탄광 마을에 눈이 내렸다.
하늘 빼고는 온통 까맣던 철암동에 하얀 눈이 내렸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를 녹이려 가정집 보일러의 연탄은 제 몸을 태우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자신의 몸뚱이를 다 태우며 아랫목을 만들던 저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찰 수 없듯이, 철암동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네를 함부로 발길질하지 않았다.
함부로 버리지 못한 연탄재가 손수레에 실려 있다. 선탄장 주변 가정집들은 아직도 연탄으로 추위를 녹이고 있다.
2014. 12. 17. 태백시 철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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