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남해의 봄 본문
경상남도 남해군 가천읍 다랭이 마을에 봄이 왔다. 원기 회복에 좋다는 마늘이 따뜻한 해풍을 맞고 흙속을 뚫고 나와 초록빛으로 계단을 물들이고 있다. 풍광이 빼어나다며 지난 2005년에 국가명승지 15호로 지정됐는데, 다랭이에 얽힌 사연은 고단한 삶이다.
400여년전 설흘산 너머 사람들이 미역과 다시마를 채취하러 왔다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배가 닿을 수 없는 험한 해안 지형이라 정착민들은 농사를 선택했다. 설흘산과 응봉산의 가파른 산비탈에 농작물을 심어야했기에 계단식 농토를 만들었다. 돌부리를 뽑고, 뽑은 돌부리로 석축을 쌓고, 석축 안에 흙을 채워 넣었다. 평균 3미터 높이의 석축이라는데, 1미터 높이의 돌을 쌓을려면 막돌 70-80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계단식 논을 개간하는 걸, 다랭이를 친다고 하는데 다랭이 치는 것만큼이나 다랭이 농사도 힘들다. 마을 똥이 모자라 이웃 마을에서 거름을 이고 평균 45도 경사의 산비탈을 오르 내렸다. 물대기도 힘들었지만, 당시에 돈이 되는건 쌀 뿐이라 다랭이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흙이 있으면 무조건 심고 거둬들였다.
이렇게 고된 삶의 사연이 다랭이에 얽혀있다. 현재 60여 가구가 사는 다랭이 마을인데, 다섯 가구만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돕던 소들도 이제 두 마리만 남았고, 한 마리는 늙어서 거동도 힘들단다.
201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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