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세월이 비껴간 곳, 대룡시장 본문
교동도 어르신들이 대룡시장 황세환(75) 할아버지의 한 평 남짓한 시계수리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40여년전 모습을 간직한 대룡시장을 말해주듯 시계수리방의 괘종시계가 멈춰있다.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의 시간은 멈추어있다.
‘연지곤지 식품점’, ‘돼지네 식당’, ‘임득남 미용실’ 등 예쁜 이름의 간판을 단 상가 건물은 50여년전 그 모습 그대로다.
북한과 지척이라 민간인통제선 지역으로 묶인 탓에 교동도는 개발에 뒤쳐졌다.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 둘 섬을 떠났다.
농사를 짓던 원주민들도 교육 때문에 자식을 떠나보냈다.
빈집이 늘어나 한산한 지금의 대룡시장은 시장이라 부르기 쑥스러울 정도.
몇몇 남아 있는 상가들만이 쓸쓸히 시장을 지키고 있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지광석(74) 할아버지의 이발 가위. 세월이 아무리 좋아져도 머리 자르는 도구는 가위 밖에 없다.
“또 술 마셨나보지.”
교동 이발관 이발사 지광석(74) 할아버지가 과음했나보다.
한 번 마시면 며칠씩 문을 닫는다고 이발관 옆 동산약방에 모인 노인들이 푸념한다.
올 겨울 눈길에 미끄러져 팔에 깁스도 보름 넘게 했는데 술사랑은 여전하다며 걱정이다.
동산약방 나의환(82) 약사 할아버지가 한 사진 작가가 찍어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인 약방을 찍는 사진작가들이 자기 약방을 좋아한다며 활짝 웃는다.
나의환(82)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동산약방은 50여년 동안 교동도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동네에 의원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나씨 할아버지가 제조해주는 약이 아주 잘 듣는다며 동네 어르신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아픈 데가 없더라도 농한기에 심심한 노인들은 동산약방을 찾는다.
연탄 난롯가에 둘러 앉아 마을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두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약방이자 동네 사랑방 노릇을 하는 약방이다.
젊어서 다리를 다쳐 시계를 고쳤다는 황세환(75) 할아버지가 괘종시계를 고치고 있다. 전자시계의 등장으로 일거리가 줄어들자 황씨 할아버지는 도장을 파기 시작했다.
건넛집 시계수리방은 수용 인원이 세 명이다.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 때문.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도 서로의 무릎이 닿는다.
다리가 불편한 시계수리공 황세환(75) 할아버지를 위해 물도 떠나주는 좋은 말동무도 많다.
황씨 할아버지는 도와주는 동무들이 고마워 봉지 커피 한잔씩을 대접한다.
오후 4시 30분에 문을 닫는 황세환 할아버지의 시계방을 시작으로 대룡시장은 일찍 문을 닫는다. 슬레이트와 함석 지붕이 옛 모습 그대로다.
“내년에 다리가 생긴다니까 좀 좋아지겠지.”
강화에서 배타고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교동도가 내년에 연륙교로 연결된다.
연륙교가 생기면 교동도 대룡시장의 멈춰진 시계는 다시 돌아갈까?
남은 인생 얼마나 남았겠냐며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얘기하지만 교동도 어르신들은 육지로 편히 나갈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계신 눈치다.
2013.2. 강화 교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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