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아침부터 태양이 이글거렸다. 본문
아침부터 태양이 이글거렸다. 출근하는 여성들의 복장이 부러웠다. 치마에, 반바지에, 나시에, 샌달에... 야외 취재가 많은 터라 내 몸은 노동자처럼 검게 그을리고 있다. 옷을 벗으면 하얀 반팔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몸뚱이만 하얗다.
서울 마포대교 아래
이글거리는 태양을 편집국장이 느꼈다. 사진부로 오더니 '오늘은 폭염이네'하며 한 마디 던지고 자리를 떠났다. 머릿속이 이글거렸다. 휴가 기간이라 일할 사람이 별로 없다. 그리고 하필 나만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데스크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더위 먹지 않게, 쉬엄쉬엄 해."
'편집국장이 얘기했는데, 어떻게 쉬엄쉬엄 합니까?'라고 나오는 말을 삼켰다. 벌렁대는 가슴을 쓸어안고 썬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어디로 가야 1면에 올릴만한 장면이 나올까?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육수처럼 뚝뚝 흘러내리는 땀을 털어내고 사진을 훑어 봤다. 환호성을 지를만큼은 아니지만, 루틴한 장면은 없다. 데스크가 밀어주면 편집국장도 1면으로 내세울 수 있을것 같다.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사무실로 돌아오자 후배가 한 마디 건냈다.
"선배, 사진 죽여요!"
"그래? 선배한테 많이 배워."
"근데 선배, 부안군 양식장에 바지락이 폐사했어요."
이런! 헛고생했다. 1면 사진은 폐사한 바지락 사진이다.
내 마음도 폐사했다.
서울 마포대교 남단
2015. 8. 6.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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