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제주의 밀림, 곶자왈 본문
제주도 사투리는 추측불허다. 봄에 걸었던 전남 여수 금오도 '비렁길'은 벼랑길의 전라도 말이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걷다 '비렁길'의 '비렁'은 '벼랑'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추측이 맞았다. 하지만 제주도 방언은 좀처럼 추측하기 어렵다.
혼자옵서예! 이정도는 유명해서 제주 인삿말이라고 알고 있겠지만, '무신 거옌 고람 신디 몰르쿠게?' 정도로 문장이 되버리면 제주말은 완전 해석불가하다.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지요?라는 뜻이다.
곶자왈. 어떤 것을 지칭하는 제주말이라고 생각되지만 힌트가 전혀 없다. 혹시 바닷가에 돌출된 육지를 가리키는 '곶'처럼 바다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완전히 반대다.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어수선하게 뒤엉킨 숲을 말한다. 학술적으로는 돌무더기가 많은 제주 특유의 화산 지형을 말하는데, 이런 땅에서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원시림처럼 뒤엉킨 모습이다. 다만, 학자들은 땅에 관심을 둔 것이고 제주 토착민들은 숲의 모양새를 생각했을 뿐이다.
제주 곶자왈은 안덕, 조천 등 남북부 지역을 제외한 동서부 다섯 곳에 남겨져 있다. 한라산 동쪽 허리 부분에 분포한 교래 곶자왈을 찾았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는데, 빽빽한 숲 속의 나뭇가지들이 바람의 강약에 따라 '쏴아-'하는 파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질학자들 말처럼 길은 울퉁불퉁한 돌길이 이어졌고, 길 밖에 나무들은 흙이 없어 바위와 돌을 움켜쥐고 자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곧게 뻗어가는 나무 줄기에 대한 이미지는 산산히 조각났고,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나무 줄기들과 가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밤이라면 아마 무서운 동화처럼 벌건 눈을 드러내고 나무들이 움직일 것 같다.
제주도의 밀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둘이 지나갈 산책로 밖으로 발을 내딛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식물이 뒤엉켜있다. 기본적으로 초록 이끼들이 바위와 나무 줄기들을 타고 올라가고, 타잔이 잡고 이동할만한 나뭇 가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산책길의 첫 손님이었는지, 발자국 소리를 듣고 노루 한 마리가 푸닥거리며 도망쳤다. 이렇게 험한 지형이니 제주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할 엄두가 안났을 것이다. 숯을 만들었다는 숯가마니터만 드문드문 이어진다.
3km를 지났을까, 갑자기 곧게 뻗은 삼나무 군락이 펼쳐진다. 족히 40년 이상이 됐을 법한 수령의 줄기들이 곶자왈의 어지러운 풍경과 대조적으로 하늘로 솟구친다. 시원하게 뻗은 삼나무길을 걸어 오르면 큰지그리오름 정상이다. '큰지그리' 이 또한 추측불허다. 조사해봤는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 알 수 없단다. 오름 정상에서는 한라산 중턱의 오름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데, 날씨가 궂어 한치 앞만 보인다. 왕복 3시간이면 즐길 수 있는 제주의 밀림이다.
2015. 6. 교래 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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