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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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극장

김창길 2013. 12. 25. 17:23

 

 

 

대형 복합상영관 공세에 밀려 문을 닫았던 단설극장이 실버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인천을 대표하던 미림극장이 문을 닫은 것은 2004년 7월. 사회적기업협의회 인천지부가 9년 동안 방치됐던 극장을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동구의 지역 특성을 살려 지난 10월2일 노인 전용극장인 ‘추억극장 미림’으로 만들어 문을 다시 열었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극장입니다.”

극장 운영 대부분을 노인들이 맡아서 한다는 극장 이사의 설명처럼, 매표소 입구에서 비교적 젊은 노인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노인 관객들을 맞이한다. 치아가 신통찮아 팝콘 먹기가 힘든 동년배들의 불편을 아는지, 할머니 직원들은 관람객 주전부리로 6개에 1000원 하는 풀빵도 만들어 판다. 영화 관람료는 55세 이상 2000원. 하루 1만원 이상을 쓰기 힘든 노인의 홀쭉한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극장의 운영방침이다.

 

 

 

 

 

 

“천막극장이던 미림극장은 처음에 무성영화를 상영했는데, 변사로 활동하셨던 어르신도 찾아왔어요.”

임기원 팀장(59)이 단골 노인 관람객에게 공짜 커피를 대접하며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는 옛날 동인천 극장가에서 질서유지를 담당했던 어깨출신 할아버지가 극장을 찾아, “자네가 예전에 내가 하던 일을 하고 있구먼” 하며 임 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동인천역 주변은 미림극장 이외에 오성·문화·인영극장 등 10여개의 극장이 경쟁하는, 서울 충무로와 견줄 만한 극장 거리였다. 동인천 지하상가, 송현시장, 양키시장 등 지역 상권도 단설극장의 부흥에 힘입어 영화를 누렸다. 대기업의 극장산업 진출은 단설극장뿐만 아니라 지역 상권도 무너뜨렸다.

 

 

 

 

 

재개관 2개월여 동안 추억극장 미림을 찾는 노인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외화 <초원의 빛>(1961년작)을 연거푸 세 번 보며 눈물을 흘리던 한 할아버지는 여주인공 ‘나탈리 우드’를 보며 자신의 옛 여인을 떠올리고 계셨다. 황혼 이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극장을 찾았던 한 노부부는 외화 <슬픔은 그대 가슴에>(1959년작)를 보고 난 후, 다시 한 번 함께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매달 15일에 극장에서 만나 영화를 보는 노인 커플도 있다. 운영진들은 극장 주변에 콜라텍 같은 무도장도 만들어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사교공간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때마침 옛 미림극장에서 35년 동안 영사기를 돌렸던 조점용 할아버지(68)가 극장을 불쑥 찾았다.

 

“극장 앞을 지나기가 싫었는데, 재개관하는 날 얼마나 마음이 설레던지.”

극장 건너편에 사는 조 할아버지는 문닫은 극장을 보면 마음이 썩어들어 갔다며 미림극장 재개관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극장 대표도 영사실을 맡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지금 하고 있는 다른 실버극장의 영사실을 비워둘 수 없었기에 거절했다. 대신 짬짬이 극장에 들러 극장 살림살이 훈수를 하며 직원들을 돕는다. 조 할아버지는 친구 조경수 할아버지가 자기 대신 맡고 있는 영사실로 들어갔다. 비디오테이프 영사기는 1968년작 <미워도 다시 한번>을 내보내고 있었다.

 

 

 

 


“영화야 뭐, 지겹게 봤지.”

옛 영사기사는 물끄러미 극장 화면을 바라봤다. 그가 본 것은 영화가 아니라 추억이었다.



 

2013. 12. 16. 추억극장 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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