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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봄에는 바람날만하다. 봄바람을 타고 빨간 꽃, 노란 꽃, 푸른 잎의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아, 흑백 톤의 겨울은 자궁 속에 색계(色界)를 품고 있었구나! 접사 렌즈를 통해 봄의 속살을 훔쳐봤다. 남쪽 나라 제주는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제주 남쪽 서귀포시 위미리 동백군락지에 봄비가 내리자 동백꽃이 후드득 떨어졌다. 붉은 낙화는 돌담길에 레드 카펫을 깔고 상춘객을 기다렸다. 특정 군락지가 없이 제주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도 절정이다. 오늘과 내일은 서귀포시 중문과 대평리로 이어지는 유채꽃 길을 걷는 대회도 열린다. 겨우내 잠자던 밭담 안 채소들도 기지개를 켰다. 제주 북동 구좌읍에서는 당근과 무를 수확하려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촉촉한 흙에서 속살을 드러낸 홍당무와 푸릇한 ..
경상남도 남해군 가천읍 다랭이 마을에 봄이 왔다. 원기 회복에 좋다는 마늘이 따뜻한 해풍을 맞고 흙속을 뚫고 나와 초록빛으로 계단을 물들이고 있다. 풍광이 빼어나다며 지난 2005년에 국가명승지 15호로 지정됐는데, 다랭이에 얽힌 사연은 고단한 삶이다. 400여년전 설흘산 너머 사람들이 미역과 다시마를 채취하러 왔다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배가 닿을 수 없는 험한 해안 지형이라 정착민들은 농사를 선택했다. 설흘산과 응봉산의 가파른 산비탈에 농작물을 심어야했기에 계단식 농토를 만들었다. 돌부리를 뽑고, 뽑은 돌부리로 석축을 쌓고, 석축 안에 흙을 채워 넣었다. 평균 3미터 높이의 석축이라는데, 1미터 높이의 돌을 쌓을려면 막돌 70-80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계단식 논을 개간하는 걸, 다랭이를 친다고 하..